책과 문구류/리뷰와 서평

<폭풍의 집>을 읽고

매일사부작 2022. 10. 20. 11:39

첫 페이지를 넘겨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모든 이야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단순히 이야기만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감정까지 넘실넘실 흘러넘친다. <폭풍의 집>이라는 제목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작가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만 등장시켜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주로 인간의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데이트폭력, 살인, 강간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주로 사용하기에 마냥 편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볼 수는 없다. 어두운 이야기로 분위기를 조성한 뒤 사람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가는 '그 무언가'를 사용하여 공포감을 확대시키는 방법이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용된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도 상당하다. 특히나 다수의 이야기가 열린 결말로 끝나 여운을 남기기에 책장을 덮어도 여운이 오래 간다. 습하고 축축한 물안개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으슬으슬하게 몸이 떨리게 되는 것처럼, <폭풍의 집>도 그런 음습한 공포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심각한 사건을 겪고 불안함에 시달릴 때,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끝없는 절망 속에서 슬퍼할 때. 그럴 때 괴물을 자처하는 무언가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이게 진짜인지 내 망상에 불과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보여준 행보가 어떻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가 중요할 뿐. 

 

고립감 속에서 오는 공포와 속도감을 즐기고 싶다면 <폭풍의 집>과 <괴물의 집>을, 전통적인 요소에서 오는 오싹함을 즐기고 싶다면 <허수아비>와 <아까시나무>를, 평범했던 일상이 망가지는 공포를 즐기고 싶다면 <손>이라는 작품부터 우선 골라읽어보길. 얼음을 와작 깨물어 먹는 것처럼 차가운 공포보다는 벌레가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처럼 음습한 공포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