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구류/리뷰와 서평

가깝고도 먼 관계 - <사나운 애착>을 읽고

매일사부작 2022. 2. 14. 20:38

'작가들의 작가'라는 호칭이 괜히 주어진 것이 아니구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제목이 이렇게 내용과 잘 어울리는 책은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사나운 애착>이라니. 사납다는 단어와 애착이라는 말이 함께 쓰일 수 있다고는 대부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격적인 느낌을 주는 사납다는 단어와 포근한 느낌을 주는 애착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엄마와 딸의 관계를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하다니. 

 

여기서 등장하는 엄마와 딸은 마냥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도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몇 달씩 얼굴을 보지 않기 일쑤다. 엄마는 자신이 모르는 것-지식이든 가치관이든 물건 사용법이든 뭐든-을 자연스럽게 쓰는 딸을 보며 열등감과 부러움, 분노를 느끼고 딸은 엄마의 그런 모습에 진저리를 친다. 딸은 과거 엄마가 밟아온 행적을 한심하게 여기고 엄마는 그런 딸의 태도에 슬픔과 노여움을 참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멀리하지 않는다. 언쟁이 있어 몇 달씩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한 쪽이 이사를 가거나 연락을 끊거나 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격렬한 언쟁 이후 한풀 꺾이고 지친 목소리로 엄마가 묻는다.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
 나는 방 안의 빛을 본다. 거리의 소음을 듣는다. 이 방에 반쯤 들어와 있고 반은 나가 있다.
 "안 그럴 거 알아, 엄마."

 

딸의 대답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관용어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본능적으로 한 사람이 자취를 감추면 다시는 상대방을 볼 수 없을 거라는 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미움, 사랑, 애정, 애증, 경멸, 슬픔, 허무, 무시, 연민, 동정 등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마음이 켜켜이 쌓인 모녀 관계는 마냥 다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속된 말로 볼 꼴 못볼 꼴을 평생 옆에서 같이 지켜보며 살아왔는데 감정이 단순할 리가 없다. '사나운 애착'이라는 제목 안에는 이렇게 얽히고 설킨 관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작가의 복잡한 심경이 명징하게 녹아있다.

 

엄마와 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딸은 엄마의 자식이지만 엄마의 분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또다른 '나'로 혼동하는 순간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는 파괴된다. 부모와의 관계 형성은 이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한 모녀가 어떻게 적절한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날카로운 문체로 서술한 <사나운 애착>을 읽어본다면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떤지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